안녕하세요......
거의 일 년 오 개월 만에 돌아와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는 의미에서 해외여행 파트로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다음 글부터는 건강에 대하여 쓸 거예요. 지금 생각으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도 내 건강은 '빨간색'입니다. 독한 항암을 8번 한 후 수술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 25회...... 끔찍한 경험을 한 후 더 끔찍한 이야기를 씁니다.
내가 겪은 최악의 단체이야기입니다.
나는 방사선 치료 후 '유방암 환자' 모임을 나갔습니다. 모임은 그럭저럭 한 달에 한 번이기에 별 부담 없이 나갔었지요.
모임 평균 연령은 한 70세 정도.. 그 위에 상급 단체가 있는데 이름은 '한국유방암 환자 총 협회' 이름하여 '한유총회'입니다. 그곳에는 곽 점순 회장 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들으면 가차 없이 회원을 잘라버리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계시지요....
내 경험은 진난 4월부터 시작이 됩니다. 단체에서 충청도로 여행을 가는 날 회장은 마이크를 잡으며, 많은 썰을 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BMW 자동차가 많이 다녀서 남편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와주는 이가 별로 없다는 말과 함께 등등..... 나는 쉬는 시간에 처음 본 회장에게 다가가 '회장님! 운전이나, 번역은 제가 좀 도와 드릴 수 있을 거예요.' 했더니, 나를 처다 본 후 '쳇' 하며 팔을 빼더라고요...
그 후 다시 만난 것은 4월 16일 회장의 이천 농막에서 입니다. 산채비빔밥 행사를 한다 하여 이천을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나는 단순히 밥을 먹으러 간 것이 아니라, 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방사선 치료가 끝난 후 체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기이며 표적 항암제를 복용하는 시기라 몸이 엉망이었습니다.
회장은 인사를 하는 나에게 다가와 반말을 하며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며 나를 데리고 간 사람에게 아주 얇은 플라스틱 접시를 닦으라 '명' 했습니다. 결국 접시는 나 혼자 닦아야 했는데, 문제는 물이 산에서 내려온 물이라 손이 얼었다는 것이며, 흔한 고무장갑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몸이 빳빳하게 굳는 느낌과 몸에 가스가 차서 일어서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릇을 닦은 후 나는 '회장님, 다음에는 뭐를 할까요? 묵을 썰을까요?' 했더니 그러라고 하며 '칼을 주었습니다.
묵을 썰려고 준비를 하니, 부회장이란 여자가 다가와 '내가 하지요..' 목소리를 깔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칼을 주었고 참 희한한 모양으로 묵을 썰고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저걸 어떻게 하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 회장이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은 나를 가르치며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 저걸 누가 먹으라고 저렇게 썰은 거야??? 너라면 먹겠니? 고생하며 만든 묵을 잘못 썰어서 망쳤어!!'
그녀에 손에 들려 있던 칼 끝은 나를 향하며 혀를 차고 있었습니다. 그 후 쉬는 시간에 회장은 즉석밥에 방부제가 첨가된다는 것과 팻트병 물에 방부제가 들어간다는 유언비어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나는 햇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한 후 절대 즉석밥은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회장님 절대 그러지 않아요. 특히 말씀하신 햇반은 내가 잘 알아요. 물도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요. 식품 위생법이란 것에 걸려요...' 그녀는 나를 다시 아래위로 훑어보았습니다. 그 후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그곳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말에 긍정하지 않고 '토'를 달아서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회장의 칼춤은 '주둥아리 춤'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에 대한 험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딱 2번 본 사람에 대한 엄청난 험담...... 5개월 후 나는 무너지고 있었으며, 나 만 모르고 있는 내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5개월이 걸렸습니다.
최유현 그녀의 이름입니다. 종암동에 살며 20년 전인 30대에 유방암 수술을 받은 사람. 아주 평범한 가정 주부, 전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유방암 환자 모임 총무' 내가 아는 그녀입니다. 지금은 50세를 넘긴 나이. 안암 병원 종양 내과나 유방암 외과 의사 선생에 대해서 100%를 알고 있는 것으로 말하는 여인, 남의 흉을 보고 싶으면 그녀에게 말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말의 씨앗이 솜사탕이 되어 번져주지요. 내가 부르는 별명은 '스피커' 나는 그녀를 언젠가부터 스피커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를 보며 한 생각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망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것이 뭐든 사람을 망친다' 란 옛날 말씀입니다.
한문은 정말 모르고, 영어는 취미라서 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라며 영어는 절대 못하는 그녀는 식약청장도 모르는 자격증인 '한식 조리기사 1급'을 소지하고 있다는 그녀...... 국어국문과와 문예창작과 두 개의 학사를 취득했다고 했습니다. 대학 이름을 물어보면 '있어요' 대학을 졸업했다 말합니다. 나는 그녀가 소설이나, 어떤 종류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대학 시절 이야기 또 한 들은 경우가 없습니다. '있어요' 대학은 그런가??? 92학번쯤 되는 그녀는 문창과를 나왔다는데 '시놉'에 대해 물어보면 '알고 있는데 지금은 말하기 싫어'라고 말하며 내가 경영했던 회사의 이름은 기억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말하며 '나는 너에 대해 알아봤어' 뉘앙스로 말하곤 했습니다. 내 친구의 흉을 보는 것이 실증 날 즈음 그녀의 화살은 갑자기 나에게 향해왔습니다.
'언니 곽 회장이 언니보고 사기꾼이라 했어, 나는 그래서 회장님 그것은 제가 보고 판단하겠습니다.'라고 했지.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소리 그리고 미련한 나는 그 말이 내 이야기라고 생각도 못하고 듣고 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잠을 못 잔 후 나는 그 말에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이틀이 지나습니다. 물 한 방울도 먹지 못했으며, 화장실을 기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나는 심각한 내 상태를 알아차렸습니다.
암과의 싸움 일 년!! 칼 춤추는 회장과 인간쓰레기를 만든 최유현..... 나는 그들에게 물한 모금 얻어 마신 경우가 없으며 '고유회'란 단체에서 일 원짜리 하나 빌린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에게 '옛날에 나는 말이야' 이러며 이야기를 한 경우도 없었습니다. 또한 누구에게 '사업 계획서' '투자 계획서' 이런 종이 짝을 디민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냥 앉아서 아주 민망할 정도로 멍청히 당 한 일이라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우며, 뭔가를 먹으면 구토를 했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사람의 말이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또 한 병이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 때문에 사람이 죽어간다는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허무맹랑하며 황당한 곽 점순 회장과 최 유현은 지금 어디서 또 다른 칼춤을 추고 있을까요?? 이것이 환자 단체의 민낯입니다.
가을은 결실을 보는 계절이라 하는데 그들의 결실은 칼춤과 사람을 죽이는 허무하고 서러운 몸짓입니다..... 다시는 나와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어서 일 년 오 개월 만에 새로운 신고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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